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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회장 인사말 |
경주최씨 화숙공파 준운공후손종중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우리 종회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시조님이신 고운 최치원 선생의 9세손 이시며, 고려 충숙왕(忠肅王)조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벼슬을 하신 화숙공(和淑公) 할아버지를 모시는 계파 후손 문중이며, 화숙공의 6세손 이시며, 조선 11대 종종 재위 14년에 중종조 정국공신 이신 계림군(鷄林君) 의 둘째 손자이신 통덕랑(通德郞) 泳河公 께서 서기 1519년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인하여 나라가 혼란할때 이곳 청주(淸州)로 내려오셔서 터전을 잡으셨으며, 이렇듯 입향조 泳河公 이래로 19 세대(世代) 오백여년의 세월을 보내며 혈족으로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고 보본숭조(報本崇祖) 하고 종친돈목(宗親敦睦) 하면서 자손들이 선조의 위엄(威嚴)과 유덕(遺德)을 계도전승(啓導傳乘) 하는데 우리 종회(宗會) 설립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종회는 협의체의 집행기관인 이사회를 중심으로 종사를 운영 하면서 원로종친으로 구성된 자문기구인 원로회를 통하여문중 어르신들의 소중한 경륜과 지혜를 종사 운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또한 별도의 장학회를 구성하여 문중의 미래인 후손들의 교육 및 장학사업을 적극 시행하고 있습니다.
서기 857년 통일신라 말기에 서라벌 사량부 ( 경주 )에서 태어 나시어9세기를 풍미하며 살으셨던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서양사 중세시대 1,000년을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 (성 아우구스 티누스 . 토마스 아퀴나스 . 단테) 3분이 있었다면,동.서양을 아울러 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정치가로고운 최치원선생을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조명하고추앙하고 있음은 후손의 한사람 으로서 지극히 자랑스러운 일이라 할수 있습니다.
2020년 지난해는 경주최씨 시조님이신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고려 현종 11년 ( 서기 1020년) 성균관에 봉안 되신지 1.000년이 되는 해로 그간 전국에 산재 되어있는 성균관 과 향교 234 곳에 봉안 되시어매년 춘기석전 과 추기석전 등 년 2회 향사를 받으시며 전국의 유림들로 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으시고 계십니다.이러한 자랑스러운 문중(門中)의 회장으로 취임함에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제 맡겨진 임기동안 시조님 과 선조님들의 높으신 유산과 정신을 이어받고, 또한 모든 종친들의 지혜와 마음을 모아보다 나은 문중으로, 또한 조상들을 본받는 후손들로 거듭날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하겠습니다.
끝으로 우리 종회(宗會) 홈페이지를 방문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21년 4월 일
慶州崔氏峻雲公後孫 宗中
會長 崔 贊 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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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회장 인사말 |
경주최씨 화숙공파 준운공후손종중 홈페이지 방문을 환영합니다.안녕하십니까!
경주최씨 준운공후손종중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경주최씨는 기원전 57년 신라 혁거세를 왕위에 오르게 한 6촌장 중의 한 분인 소벌도리 공 [추봉 문열왕] 으로부터 24세에 이르러 우리나라 유학(儒學)의 원조이신 문창후(文昌侯)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先生께서 세상의 문명을 떨치시니, 이분을 우리의 시조(始祖)로 모시고 있습니다.
또한 파조(派祖)이신 화숙공(和淑公)은 고운 시조님 의 9세손으로 고려조 27대 충숙왕(忠肅王)때 서해도 안령사를 역임하셨고, 28대 충혜왕(忠惠王)때 화숙공(和淑公)으로 증시(贈諡)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치적으로 명망이 두터웠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러 경주최씨 가문을 빛냈습니다.
자녀는 3남 (습. 잉. 주 ) 와 4녀를 두셨습니다.
회숙공의 시제는 매년 음력 10월 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 구일안골 선영에서 봉행하고 있습니다.
경주최씨 준운공후손종중(우리종중)은 지난 2016년 11월 13일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중리 294-1(종중선산)에 1층 60평의 재실(齋室)과 2층 26평 규모의 휴식주거 공간의 원룸을 축조한 후 중시조이신 준운공 할아버님의 아호를 따서 태산효재(泰山孝齋)라 명명하고, 화숙공의 9세손이신 영하공(泳河公) 이하 18세손이신 종자항렬(宗字 行列) 조상님까지 위패를 재실에 봉안, 매년 음력 10월10일 이 지난 첫째 일요일 시제를 봉행하면서 숭조(崇朝)와 돈종(敦宗)을 바탕으로 선조의 분묘 유적, 유산을 유지 보전 관리하고 후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의견을 교류하며, 친목을 돈독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족보 상담이나 종사에 관한사항 그리고 경주최씨 역사에 대한 궁금한 사항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여 연구하고 또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보다 정보화 시대에 맞는 알찬 내용의 홈페이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애정을 실어 지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3월 일
경주최씨 준운공후손종중
회장 최 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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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임 회장 인사말 |
존경하는 종친 여러분
계절은 한가위 추석을 지나 이제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경주최씨 시조이신 고운 할아버지께서는 신라 헌안왕원년(서기 857년) 신라의 수도였던 사량부에서 태어나셨으며, 字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이십니다. 먼저 우리는 너무나 존경스럽고, 위대하신 분의 후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그 어느 위인과 영웅들이 남겨놓은 유적보다 많은 발자취와 이름을 남긴 분, 그 분이 우리들의 시조님이십니다.
우리 시조님께서 중국 당나라에서 쓰신 “계원필경”은 현재 중국 정사인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에서 빠진 부분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중국정사에서 당나라시대를 조명하는데 “계원필경”을 인용할 만큼 매우 정확한 역사서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가장 잘 알려진 유학자인 퇴계 이황(李滉)선생은 시조님의 글들을 접해본 노년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 경주 서악정사의 이름을 지으면서 지은 시 ---
( 儒官好闢仙山境 ) 유관호벽선산경: 유학자로 신선의 경지 열기를 좋아했으니.
( 老我增恩實趁名 ) 노아증은실진명: 늙은 나, 실로 뒤따르고 싶은 마음 더해지네.
이렇듯 우리 시조님을 추앙하는 시를 남겼으며, 또한 시조님의 작품이 학계에서 연구되면서, 1993년 창작과 비평사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문학박사 교수 유흥준은 '천하의 대문장가 최치원의 글이 이 비문(智證大師碑文, 지증대사비문) 보다 더 잘 나타난 것이 없다. 글의 구성은 도도한 강물의 흐름처럼 막힘이 없고, 이미지의 구사는 그 스케일이 클 뿐 아니라 비유와 비약이 능란하다. 그 흐름, 그 무게, 그 감성의 번뜩임이 나를 몇 번이고 놀라 자지러지게 한다.'고 기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문장가요, 문학의 시조이며, 사상가이며, 실천주의 정치가인, 우리시조님, 그 분을 시조로 모시고 있는 우리는 너무도 자랑스러운 종친들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시조님의 글을 높게 평가한 중국 국가주석 강택민, 그리고 그의 고향인 중국인민공화국 양주시 정부에서는 지난 2008년 잘 보존된 당성유지(唐城遺地) 안에 최치원기념관을 건립해 주었으며, 매년 10월15일을 최치원의 날로 지정하고 경주최씨중앙종친회 및 중국 양주시 주관으로 제향 및 기념식 그리고 고운 시조님의 사상과 철학, 문학 등 그분의 업적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조님의 훌륭하신 피를 나눈 우리 경주최씨준운공후손종중에서는 우리 문중의 염원인 올바른 뿌리찾기를 위해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 끝에 역사적 사실을 통한 우리의 뿌리를 찾았으며, 이에 바로 된 새 파보(인터넷, 책자)를 편찬하고 있습니다.
각 가정에 족보가 있는 것은 조상을 높이고 그 씨족을 차례하여서 큰 일통(一統)으로 돌아가게 함이며, 수십년 수백년 후에 흩어진 씨족이 성기(性起)가 미침으로 뿌리를 찾을 수 있음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족보를 보면 위소족과 어느 파의 종가나 자손의 관계가 명확하니 이른바 유족(類族)으로 분별해서 족보가 필요함이요, 효도하는 유연(類緣)이 난다고 함에 족보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 경주최씨의 시조이신 문창공으로부터 지금의 천백여년에 충현(忠賢)이 대대로 나타나 본손자손이 번영해서 대성(大姓)이라 여기였으며, 甲寅(서기 1743)년에 처음으로 문중의 족보를 이룬 후 시대를 거처 많은 족보가 편찬되었으나 우리 문중의 종친들이 계열을 잃음으로 큰 변이라 생각됨에 이에 종중으로 부터 원보(原譜)를 중수(重修)해서 얻음이 됨에 새파보의 장을 여는 것이요, 지금 이후로는 일통으로 돌아가 조종(祖宗)의 정(靜)과 파류에 확실한 것을 얻게 됨에 우리 준운공후손들의 큰 자랑입니다.
경주최씨준운공후손종중 종친 여러분!
모든 일이 몇 사람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의 지혜와 힘이 합하여 이루어짐이 사리(事理)이니 그간 자료수집에 적극적으로 힘써주신 모든 종친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드립니다. 이제 우리모든 문중의 종친들이 우리 시조님의 애민정신(愛民精神)과 경주 최부자댁 가문의 만민사랑을 본 받아서 대대로 조상님들과 하늘의 축복을 받는 삶이 이어지시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2015년 10월
慶州崔氏峻雲公後孫宗中
會長 崔 奇 煥